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호 전차 마우스 (문단 편집) === 개발 === 동부전선 개시 직후인 1941년 11월, [[T-34-76]], [[KV-1]]을 비롯한 소련군 전차에 히틀러가 그들을 쉽게 격파할 수 있는 전차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70톤급 초중전차 개발을 지시했다. 이게 바로 [[7호 전차 뢰베|뢰베]]인데, (VK 70.01) 여기서 그치지않고 1942년에는 [[크루프]], [[포르셰]]사에 100톤급 전차를 (VK 100.01) 설계하도록 지시하였다. 첫 포르셰 설계안은 1942년 6월에 나왔다. 주포는 15cm KwK L/40을 장비했고 전면 장갑은 120mm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더 큰 전차를 원해서 120톤까지 중량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2.bp.blogspot.com/Maus-plans-1.jpg|width=100%]]}}} || || '''설계도 #3381, 1942년 6월 4일''' || 다음 설계도는 그 달 17일에 나왔다. 총중량은 140톤까지 늘어났고 7,5cm KwK L/24를 사용하는 부포탑이 생겼다. 장갑은 150mm까지 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bp.blogspot.com/maus-plans-2.jpg|width=100%]]}}} || || '''설계도 #3382, 1942년 6월 17일''' || 이 단계에서는 완전히 [[다포탑 전차]]가 되었다. 그러나 협력업체들은 이 전차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크루프는 포탑을 다시 만들기 원했고, 포르셰는 서스펜션을 고치고 싶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폐기처분되었다. 새 크루프의 포탑은 15cm L/31 주포에다 7,5cm L/24 동축포를 장비했다. 무게는 150톤까지 늘어서 새로운 900마력짜리 엔진이 장비되고 궤도도 4개로 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bp.blogspot.com/maus-plans-3.jpg|width=100%]]}}} || || '''설계도 #3384, 1942년 10월 28일''' || 그러나 너무나도 과한 성능을 요구한 것이 원인이 되어 개발은 한없이 지체되었다. 주포, 엔진, 현가장치, 조향장치, 차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품을 기존의 것과 설계를 무시하고 새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374.photobucket.com/338495855wkLCHm_ph.jpg|width=100%]]}}} || || '''제작중인 마우스 포탑을 위에서 본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Germany-Panzerkampfwagen%20VIII%20Maus.jpg|width=100%]]}}} || || '''포탑이 납품되지 않아서 더미 포탑이 달린 1호차''' || 군부에서는 1942년에 시제차를 완성할 것을 요구했지만 포르셰, 크루프, 알케트 등 내로라하는 독일의 군수기업 3개사가 전부 총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프로토타입]] 1호차가 등장한 것은 1943년 11월이었던데다, 그나마도 포탑 완성이 늦어져 같은 무게의 주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모의 포탑이 실렸다. 1호차에 모의 포탑을 탑재한 것은 포탑을 만들던 공장이 폭탄을 맞고 생산이 멈춰서 포탑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공장에 방치됐다. [[https://m.blog.naver.com/minjune98/221694744275|실제 크기로 만들어진 목업과 조그만 RC 마우스를 둘러보는 히틀러와 나치 장교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3.bp.blogspot.com/Maus+Superheavy+Tank.jpg|width=100%]]}}} || || '''실제로 사람이 탑승한 마우스의 모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tanks-encyclopedia.com/Maus_Trials_1944.png|width=100%]]}}} || || '''프로토타입 1호차의 포탑을 장착한 프로토타입 2호차, 뵈블링겐 병기 시험장''' || 지체되어 나온 완성품도 요구한 성능을 채우기 위해 기획할 당시 100톤급을 목표했던 게 여러 개 늘어나면서 2배에 가까운 초중전차가 되었고, 그 덕에 운용하기에는 많은 애로사항이 겹쳐서 결국 1944년 중순까지도 2대, 그나마 1대는 제대로 된 포탑도 없는 모의 포탑 탑재형이므로 사실상 1대만 완성되는 단계에 머물렀다. 결국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던 히틀러마저도 1944년 중순, 초중전차에 흥미를 잃고 개발 중단을 지시함에 따라 정식으로 양산 계획은 폐기되었지만 시제차량 2대는 계속 제작 및 유지하라고 했다. 당연히 그 동안 마우스에게 쏟아부은 돈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히틀러도 전혀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어서 마우스가 완성되면 [[대서양 방벽]]에서 이동하는 [[벙커]]로 사용하거나, 동부전선에서 몰려오는 소련의 [[T-34-85|T-34]]를 막아내는 이동식 대전차 진지로 사용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 사용하기에도 문제가 많았고, 또 후술하겠지만 이런 걸 만들 바에는 차라리 벙커를 새로 올리는 쪽이 더 싸게 먹힐 판이었기에 때문에 더 이상의 개발을 중단시킨 것이다. ([[https://s-media-cache-ak0.pinimg.com/736x/b7/58/a8/b758a8f6c891cfaaba5f144df3af399c.jpg|마우스 전차를 둘러보는 히틀러]]) 경합의 결과만 놓고 말하면 포르셰가 완승하여 1943년 크루프의 포탑에 포르셰의 차체를 결합한 모델을 120여 대를 양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최종적으로 딱 2량이 생산된 시제기임에도 시제기의 VK 형식번호[* 독일은 개발중인 전차의 시제기에 시제전투차량을 뜻하는 단어인 Versuchskampffahrzeug의 약자인 VK와 그 뒤에 (중량).(숫자)라는 넘버링을 붙였다.]가 아니라 마우스라는 제식 전차의 이름을 받았던 것은 이 전차가 양산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